유엔의 지지를 통해 국제사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를 원했다. 따라서 당시 부시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이라크 결의안 채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였다. 이에 유엔안보리는 1441호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안보리결의안1441호는 유엔사찰단의 이라크 복귀 및 사찰 시한을 설정하고
유엔에서 대이라크 무력 사용 결의안에 묵시적 동의를 함으로써 천안문사태 이후 계속되었던 경제 제재 조치를 해제시킬 수 있었다.
5. 국제정세의 변화
1) 아랍권의 재편성
- 걸프전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아랍세계에서 군사모험주의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걸프전은 군사
제1절 무력행사의 금지
Ⅰ. 전쟁관의 변천
1. 초기의 차별전쟁관
① 차별적 전쟁관에 기초하여 정전이론이 전개되었으며, 근대 초기의 국제법학자들은 자연법사상에
기초하여 正戰論을 전개하였다.
② 대표적 학자들 : Vitoria, Suarez, Groutius, Vattel
2. 근대의 무차별전쟁관
① 19세기에
제1절 무력행사의 금지
Ⅰ. 전쟁관의 변천
1. 초기의 차별전쟁관
① 차별적 전쟁관에 기초하여 정전이론이 전개되었으며, 근대 초기의 국제법학자들은 자연법사상에
기초하여 正戰論을 전개하였다.
② 대표적 학자들 : Vitoria, Suarez, Groutius, Vattel
2. 근대의 무차별전쟁관
① 19세기에
1991년 1월 다국적군의 이라크 공습
1991년 2월 걸프전 종결
2001년 9.11 테러
1. 1991년 걸프전
> UN 안보리에 승인을 받아 정당성 획
득
2. 2003년 이라크전
> UN 안보리의 이사국의 거부에도 침
략
2. 글로벌 거버넌스의 과제
> 국제사회는 무질서 그러나 글로벌거버넌
Ⅰ. 서론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위치한 이라크는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등 찬란한 고대문명이 꽃을 피웠던 지역이다. 이후 페르시아, 몽고 등을 거쳐 153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간 오스만투르크제국(터키)의 통치를 받았다.
19세기 들어 유럽인(주
미국은 이라크전쟁에서 보인 것 같은 공격적 일방주의 전략을 앞으로도 계속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국제기구, 제도를 존중하는 온건한 다자주의로 나아갈 것인가? 공격적 일방주의는 네오콘과 부시대통령의 개성이 결합하여 형성된 역사적 우연이기 때문에, 이것은 일시적 현상인가? 아니면 이런 추
오늘날에 국제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고유명사가 있다면 그중에 하나가 분명 UN(국제연합)일 것이다. 2001년 노벨상 100주년 수상자로 UN과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지명된 것은 세계평화에 대한 기여를 국제사회가 인정한 점에서 그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UN은 세계 65억 인구와 191개국을 포함하
유엔 현장에 명시된 경우에 한정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논리는 미국에 대한 테러의 위협과 그에 대한 자위권의 행사이다. 즉,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그 무기를 테러집단에 넘길 수 있으며, 테러집단을 도와 다시 9.11 테러 같은
유엔안보리결의안 242,338호 이행 차원에서 이스라엘이 1967년 6월 이후 점령한 모든 아랍영토에서 전면철수하고,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수용하며, 대신에 이스라엘과의 포괄적 평화의 맥락에서 정상적 관계(normal relations)를 구축할 것을 촉구한다.
- 분쟁에 대한 군사적 해결